한국 민주주의는 후퇴하는가 [이원재의 사실과 진실]

 

이원재 |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지난 6월9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은 마크롱의 르네상스당보다 두 배 많은 득표를 기록했다. 프랑스 내에서 극우가 집권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떨어내고 싶었던 마크롱은 대통령 권한으로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6월30일 1차 선거 결과, 국민연합은 좌파연합과 중도연합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6월27일 미국 대선 후보 티브이(TV) 토론이 열렸다. 트럼프의 문제점을 조기에 부각하여 박빙의 여론 조사에서 골든크로스를 만들겠다는 민주당의 의도가 무색하게, 티브이 속 바이든은 인지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들키고 말았다. ‘뉴요커’의 에번 오스노스는 이날 바이든이 “고속도로에서 출구를 세 번이나 놓친 후에 담장으로 돌진한 셈”이라고 했다. 7월1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의 재임 중 행위에 대한 면책특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트럼프는 없던 날개 두 개를 달게 됐다.

르펜이나 트럼프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이론이 힘을 얻는다. 2016년 트럼프의 승리는 전세계적인 스트롱맨의 유행과 맥을 같이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작은 트럼프를 자처하거나, 푸틴이나 시진핑에 우호적이었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빈곤 탈출을 발판으로 선거에 연전연승했다.

올해 초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는 민주주의의 세계적 후퇴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서유럽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민주주의 지수가 감소했고, 이 가운데 한국은 최상위 민주주의 국가들 중 유일하게 민주주의가 후퇴한 나라였다. 윤석열 정권을 ‘검찰독재’로 규정하고 ‘자고 일어나니 후진국’이 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이 보고서는 믿을 만한 증거였다.

그러나 이 연구소 보고서의 높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국가별로 25명가량의 정치학자, 언론인, 시민운동가를 섭외하여 조사한다. 반면 비슷한 성격의 ‘이코노미스트’의 민주주의 조사는 일반인 조사 데이터를 쓴다. 조사 결과를 지난 30년으로 확장하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한국의 민주주의 점수를 국민의힘 계열 정권엔 항상 낮게, 민주당 계열 정권엔 항상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코노미스트’ 조사에서는 부침이 있을지언정, 한국 민주주의가 정권에 상관없이 향상해온 것으로 나타난다. 일반인 대상 조사가 항상 우월할 수는 없고, 현 정부의 성평등에 대한 공격과 언론 자유 위축을 주요 이유로 꼽긴 했지만 ‘추-윤 갈등’을 윤 대통령의 권력남용 성향 사례로 지목한 것을 보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 전문가 패널의 정치적 편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르펜의 약진과 트럼프의 선전을 제외하면, 2024년 상반기 세계 스트롱맨들의 선거 결과도 이 연구소의 전망과 달랐다. 압승이 예상되던 인도의 모디, 폴란드의 투스크, 헝가리의 오르반 모두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선거 결과로 애초의 정치적 야심이 크게 축소되고 말았다. 강력한 코로나19 통제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으로까지 여겨졌던 중국은 그 후과로 극심한 경기 침체에 빠졌다.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프셰보르스키)는 최근 민주주의의 최소주의적 개념을 제안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시민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자유롭게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한, 선출된 권력이 어떤 가치를 가졌더라도 민주적인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 민주주의에 두 가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하나는 자유로운 선거가 보장됐기 때문에, 결과를 결정하는 다수가 활발하게 변하면서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집행해왔다는 것이다. 2020년 이후 총 4번의 전국 선거를 두 당이 반씩 승리했다는 건 국민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를 표출해왔음을 가리킨다.

문제는 어떤 당도 선거를 통해 확인된 국민의 의사를 수용하기보다, 국민을 이기려 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대통령과 당대표를 절대화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위임 포퓰리즘으로 변질시키는 데 골몰하고 있다. 특검과 재판이라는 예정된 법의 지배를 무력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배신의 정치”, “민주당의 아버지”는 법과 제도 위에 선 영웅적 인격을 암시한다. 이 퇴행적 상징 정치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했던 때 이미 시작됐다. 로버트 케이건(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같은 보수주의자가 트럼프를 부정하는 건, 그가 선거라는 법의 지배를 부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 되는 선량 하나 찾기 어려운 한국 민주주의는 특검과 재판이 그 후퇴 여부를 결정하게 됐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2024-07-04T09:09:47Z dg43tfdfdgf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