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국민들 앞에 '정의(政醫)'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전북 CBS 이균형 보도제작국장

"남들의 귀에는 그렇게 안 들린다"(진중권 광운대 교수)

"선생님, 귀가 이상하세요?"(김행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얼마 전 CBS 시사프로그램 '한판승부'에선 그야말로 피튀기는 '설전'이 펼쳐졌다. 김 전 후보자는 "나는 강간했어도 애를 낳으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얘기하는 정신 빠진 여자가 어디 있느냐"며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를 얘기한 거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이는 국가가, 사회가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진 교수는 "강간당해서 애를 낳는 상황을 상정하면 안 된다. 이런 표현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본다.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본인 표현에 잘못이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이 둘의 계속된 '설전'은 앵커가 수차례 고성을 써가며 "그만하라"고 제지했지만, 막무가내였고, 급기야 앵커가 마이크를 꺼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앵커가 김 전 후보자와 진 교수 모두 청취자에게 사과하라고 하자 이들은 마지못해 사과했고, 앵커 역시 원활한 진행을 하지 못했다며 청취자에게 사과함으로써 방송은 엉망진창인 채 마무리됐다.

 

때마침 필자는 대학생인 딸과 함께 승용차로 이동 중에 이 토론을 생방송으로 들으면서 딸 아이에게 어떻게 들었는지를 물었더니 "도무지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는 기본자세가 안 돼 있는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확한 진단이다. 이 둘은 열린 마음으로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닌, 닫힌 마음으로 전쟁을 하러 나온 것에 다름없었다. '경청'이라는 토론의 기본은 고사하고 청취자들도 내팽개친 채 상대를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자신의 명령에만 충실했다. 그야말로 피튀기는 '血戰'에 다름아니었다.

 

다시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하나를 소환해 보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이 괴물은 아테네 교외의 언덕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그의 집에는 철로 만든 침대가 있었다. 이 괴물은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는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침대에는 침대의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어 그 어느 누구도 침대에 키가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이 괴물의 침대를 보면서 앞의 토론회 설전과 더불어 또 하나 오버래핑되는 장면이 있으니 바로 정부와 의사들이 펼치는 '치킨 게임'이다.

박종민 기자
 

"국민 입장에서 의료 개혁 완수", "의대 정원 2천명 증원 쐐기"로 이번만큼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정부에 맞서 "정부는 의사를 이기지 못한다."라며 포문을 연 의사 단체들은 "의료 체계가 붕괴될 것, 선 넘지 마라"며 맞짱을 뜰 태세다. 그런데 정부나 의사 단체들 모두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국민을 위해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쟁 같은 국민 사랑이다. 그런데 정말 국민이 자리해 있기는 한가? 필자가 보기엔 '붕어빵' 같은 소리다. 붕어 모양을 하고 있지만 정작 빵에 붕어는 없다. 정부나 의사 단체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 어디에서도 국민은 찾아볼 수 없고 상대를 굴복시키고 말겠다는 강한 전투욕만 스멀거리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을 위한다고? 그렇다면 그건 '국민빵'에 다름아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면허를 정지하고 의대 교수들의 줄사직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정원 2천명으로 쐐기를 박는 정부는 과연 목전에 놓인 의료붕괴 사태에 대해 '플랜-B'가 있기는 한가? 다른 것도 아닌, 국민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붕괴를 어떻게 막아내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중차대한 의료 개혁이었다면 외면을 받고 있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의료 수가부터 현실화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또 의대 증원이 필요했다면 그에 따른 교수진과 실습실 등 기반시설 확충이 선행돼야 했고 "이번엔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식의 증원이 아닌, 증원의 당위성과 시급성을 놓고 끊임없이 의사들과 밀당을 했어야 했다. 2천명이란 숫자도 변수로 놓고서…일각에서는 "인구소멸로 치닫고 있는 이 판국에 무턱대고 의사들 숫자만 늘려서 뒷감당을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의사 단체들은 또 어떤가! 이미 국민의 싸늘한 시선이 입증하듯, 의사들을 향해 쏟아지는, 특권의식을 질타하는 목소리부터 곱씹어야 할 것이다. 사실 그동안 의료 개혁을 추진했던 역대 정부를 상대로 의료계는 9전 9승 9(T)KO의 전적을 거뒀다. 거의 과거 핵 주먹 '타이슨'급이다. 이런 승률 속에 민심은 멀어졌지만, 집단 이익만큼은 지켜냈다. 여기에 "의사 한 명이라도 다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의사협회 회장의 취임 일성은 불타는 민심에 휘발유를 끼얹었다. 국민이 다치고 죽어 나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사 한 명이 다치는 것은 참을 수 없단 말인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어디에 의사 한 명이라도 다치면 좌시하지 말란 말이 있던가!

 

25일 오전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의보감으로 잘 알려진 구암 허준 선생께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되면 천지간(天地間)의 도(道)와 합치(合致) 되는 것이요, 야심(野心)이 있으면 도(道)에서 멀어진다." 불구대천지원수가 아닌 정부와 의사가 허심탄회하게 마주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침대 괴물 역시, 지혜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자신의 침대에 눕혀져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정부와 의사가 서로 괴물이 돼 철제 침대를 들고나와서 서로를 그 침대에 누이려 안달인 모습을 보며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는 국민으로부터 받아들게 될 비극적인 결말이 심히 우려스럽다. 장담컨데 이 치킨게임이 계속된다면 그 결말은 분명히 정부와 의료계 모두 참담할 것이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진 것 한두 개는 양보해야 한다. 전장에서도 적장의 목을 치려면 나의 팔다리 하나쯤은 내 줄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다. 그것이 협상이고 타협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막말과 설전으로 범벅이 된 '한판 승부'의 토론은 사과로 마무리했다지만, 정부와 의사들의 '한판 승부'는 과연 사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정부와 의사들에게 한마디 던진다. "지금 당장 서로의 침대를 버려라! 아니 기왕에 들고나온 침대라면 상대방을 죽이려는 '살인(殺人) 침대'가 아닌, 사이즈 조정을 해서 서로를 살리는 '활인(活人) 침대'를 만들라. '침대는 과학'이라는 광고 카피도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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