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핵무기 만들 돈 없다” 김영삼 “거짓말”···1차 북핵위기 협상 담긴 외교문서 해제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2306권 공개

‘제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1993년도 문서

“북한에는 핵무기가 없고, 제조 능력도 없으며, 핵무기를 제조할 이유나 동기도 없으며, 돈도 없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시작된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김일성 주석이 핵무장 의사가 없음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그 해 10월 북한을 방문했던 개리 애커먼 미국 하원 외무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은 방북 후 한국에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만나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이를 전해 들은 김 대통령은 “전적으로 거짓말”이라고 일갈하면서 “위성촬영 등 여러 정보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외교부는 29일 이 같은 북·미 협상 내용이 포함된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2306권, 37만여 쪽을 일반에 공개했다.

정부는 국민 알 권리 보장과 외교 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올해는 북한의 NPT 탈퇴 선언으로 ‘제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1993년도 문서 중심으로 공개됐다.

1993년 3월 북한의 NPT 탈퇴로 촉발된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 당시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 차관보와 강석주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이 뉴욕과 제네바에서 1·2단계 고위급 회담을 가지며 외교 기 싸움을 벌인 상황도 기록됐다. 또 북한이 핵을 두고 미국과 담판을 벌이기 시작한 초기에 어떤 체제 안전 보장안 등 반대급부를 얻어내려 했는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

북·미 핵 협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주한미군 핵무기 배치와 관련된 1950년대 외교문서의 공개 여부를 두고 당시 정부가 고심한 사실도 드러났다.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외무부는 1993년 10월 9일 국방부 장관에게 협조 공문을 보내 한국군 병력 감축 및 재편성, 미 공군 핵무기 배치 등에 대한 과거 외교문서를 공개해도 될지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정부가 공개를 고심했던 문건을 보면 국내에 핵무기가 배치됐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포함됐다.

1983년 소련에 의한 대한항공(KAL) 여객기 격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시도가 한·소 수교 이후인 1992∼1993년 진행된 내용도 담겼다. 1992년 9월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방한을 앞두고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KAL기 블랙박스 내용을 포함한 사건 관계자료를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간 행방을 알수 없었던 블랙박스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한국 정부는 블랙박스 원본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옐친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넘기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옐친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 변화에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할 만한 대목도 문서에 담겼다. 주한미국대사관 측이 옐친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틀 전인 11월 12일 한국 측에 KAL기 블랙박스를 ICAO와 같은 중립적 국제기구에 보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블랙박스 원본을 입수한 것은 조사가 다 끝난 이듬해 7월이다.

또 1993년 개최된 대전세계박람회(대전엑스포) 조직위가 북한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 ‘단계별 계획’을 짰던 내용 등이 공개됐다. 단계별 계획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전엑스포 참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볼 수 있다. 오는 6월 이후에는 ‘공개외교문서 열람청구시스템’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공개될 예정이다.

박은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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