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원장 정청래 카드는 ‘뜻밖의 한 수’

과방위, 최민희 위원장·김현 간사 ‘일당백’…운영위도 전략적 배치

여당은 남은 7개 상임위원장 놓고 고심…제3당 의원은 실속 챙겨

[주간경향] “이후에도 법무부 장관이 오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 조치가 준비돼 있는지 법사위원장님한테 좀 묻고 싶다.” 지난 6월 12일 야당 단독으로 열린 22대 국회 첫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청래 법사위원장에게 박성재 법무부 장관의 불출석 관련 조치를 물었다. 정 위원장은 “이것은 대통령 눈치 보기인지, 아니면 법무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부처가 아닌지, 아니면 국회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국회 무시인지, 나중에 다 자업자득으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 장관에 대한 사전 경고와 다름없었다. 강경파 정 위원장의 작심 발언이니만큼 박 장관으로서는 향후 법사위 출석을 앞두고 가슴이 뜨끔해질 법하다. 이날 정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온 해병대 채 상병 특검안을 법사위에 곧바로 상정했다.

앞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6월 7일 22대 국회 법사위원장 후보자로 정청래 의원을 추천한 것 자체가 전반기 국회의 ‘강성’ 전략을 선전포고한 셈이었다. 애초 민주당은 국민의힘과의 원 구성 협상에서 법사위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법사위원장으로 국회의장 후보 선출에서 탈락한 추미애 의원을 비롯해 정청래·박주민·전현희·이언주 의원 등 강경파 의원이 거론됐다. 예상대로 초강수를 뒀다. 19대 국회 전반기 박영선 법사위원장(민주당), 20대 국회 전반기 권성동 법사위원장(새누리당)에 맞먹는 초강경 법사위원장이 등장했다.

정 위원장은 21대 국회 후반기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위원장으로 1년간 활동한 적이 있다. 상임위원장에 오르면 최고위원직을 내려놓는 관례도 거부한 정 위원장은 당시 여당의 강경파인 권성동 의원과 거친 말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전투력을 보였다. 후반기 원 구성 합의에서 과방위와 행안위를 1년씩 교대로 하기로 했던 터라 정 위원장이 과방위원장을 1년 만에 내놓았고, 민주당은 정 위원장의 공백을 절실히 느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관 전 위원장에 이어 김홍일 위원장까지 ‘2인 체제’로 파행 운영됐고,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체제가 전횡을 일삼았지만 국회 과방위는 제대로 견제를 하지 못했다.

전투력 짱 정청래 위원장은 ‘뜻밖의 한 수’

정 위원장의 법사위원장 배치는 민주당의 기존 상임위원장 추천 관례를 벗어나는 ‘뜻밖의 한 수’였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본인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고, 이재명 대표와 친명 박찬대 원내대표의 결단이 있었다는 해설이 나왔다. 2027년 3월 대선을 앞두고 22대 국회 전반기에 법사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법사위에 위원장만 강성파를 보내지 않았다. 간사인 김승원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출신 박병석 당시 의장이 언론중재법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자 페이스북에 욕설을 의미하는 ‘GSGG’라 썼다가 사과한 전력이 있다. 여기에 터줏대감이자 정치 9단 박지원 의원이 배치됐고, 강경파 최고위원인 서영교 의원도 들어왔다. 서 의원 역시 법사위원을 해본지라 여당이 상대하기 만만치 않다.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전현희 의원, 재선의 강경파인 김용민·장경태 의원까지 법사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서울중앙지검장 출신 이성윤 의원과 대장동 변호인단에 포함됐던 이건태·박균택 의원까지 포함하면 초호화 멤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위원장의 전투력만큼은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다. 한 인사는 “국민의힘으로서는 정 위원장 독주체제를 막기 위해서는 오히려 빨리 위원회에 들어가 김승원 민주당 간사와 법사위원들을 상대하는 게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민주당으로서는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관리와 협치라는 두 가지 가치 중 전자를 선택한 것”이라면서 “법사위를 비롯한 여러 상임위 활동에 관한 22대 국회 전반기의 원내 전략이 여기에 모두 맞춰져 있다”고 평가했다.

재선 의원인 최민희 과방위원장도 눈길을 끄는 인선이다. 3선 의원들이 줄줄이 상임위원장직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내 지도부가 재선 의원을 상임위원장으로 밀었다. 게다가 최 위원장은 지난해 국회 야당 몫 방송통신위원으로 추천받았으나 윤 대통령의 임명 거부로 결국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윤 대통령 저격수를 위원장으로 내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로 되돌아온 방송 3법 개혁안을 관철하겠다는 민주당의 의지가 보인다. 여기에 재선 의원을 위원장으로 상대해야 하는 국민의힘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과방위 간사 김현 의원은 앞서 방송통신위원으로 현 정부가 장악한 방통위 내부에서 싸워왔다. 언론방송 정책에 밝은 ‘최 위원장-김 간사’ 체제만으로도 민주당은 일당백이란 평가가 나온다. 또한 언론인 출신 한민수·이정헌·노종면 의원이 배치됐다.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인 변칙 2인 방통위 체제와 독단적 방심위 운영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내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과방위도 법사위처럼 정면으로 맞붙어야 한다는 당 지도부의 의중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역대 국회에서 서로 가지 않으려고 한 비인기 상임위인 과방위와 법사위가 ‘22대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에게 인기 상임위가 돼버렸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직접 상임위원장을 차지한 국회 운영위는 최다선(6선)의 추미애 의원을 비롯해 재선 이소영 의원 등의 활약이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으로 대통령실 행정 경험이 풍부한 윤건영·박수현·고민정 의원을 배치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 대통령실 관련 사안을 집중적으로 캐묻겠다는 전략이 엿보인다.

박주민 의원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꿰찬 보건복지위도 주목해서 봐야 할 상임위다. 21대 국회 막판 이재명 대표가 제기한 연금개혁으로 여야가 거세게 부딪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의대 입시 정원 확대로 인한 의·정 갈등과 의료대란으로 뜨거운 상임위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당의 한 내부인사는 “박 원내대표가 상임위원장을 배정하면서 위원장급 중진 인사들과 관례상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중진 의원들 사이에 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의 철저한 강경 원내 전략이 ‘통보식’ 상임위원장 추천에 투영돼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은 물론 이후 국회의장 후보 선출에서 드러난 강경 지지층의 뜻이 상임위원장 추천에 뚜렷이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2년 동안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보면 법사위나 과방위 등에서 강공 전략이 오히려 상황 논리상 국민에게 공감을 주는 측면이 있다”면서 “다만 여야 협의라는 의회 정신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면서 가느냐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강경 상임위원장의 독단적인 운영이 비난을 받게 된다면 오히려 이재명 대표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과방위…조국 대표는 국방위

국민의힘은 남은 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법사위·운영위·과방위 등 노른자 상임위를 뺀 나머지 상임위를 넙죽 받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거부만 하기에는 대책이 없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는 “국회의장 선출에서부터 11개 상임위원장 선출에 이르기까지 여당이 무조건 거부한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추경호 원내대표가 무전략으로 민주당의 강공에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남은 7개 상임위의 비중도 가볍지는 않다. 정무위나 산자위 등에는 중요 현안이 산적해 있다. 또한 여당으로서 외교통일위, 국방위, 정보위는 꼭 챙겨야 하는 상임위다. 특히 정보위는 여당이 상임위원장직을 쉽사리 내줘서 안 될 만큼 민주당 정보위원의 면면이 화려하다.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 국정원에서 근무한 김병기·박선원 의원, 통일부 장관 출신의 이인영 의원, 정통 외교관 출신의 위성락 의원을 배치했다.

상임위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당은 마냥 손을 놓고 있다가는 비판만 받을 수 있어서 각종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부 고위 공무원들은 국회 상임위에 여당 특위까지 참석해야 해 마음고생이 심하다. 최병천 소장은 “7개 상임위원장을 받으면 모욕적이고 받지 않으면 실익이 없게 돼버렸다”면서 “여당으로서는 마땅한 투쟁 수단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상일 평론가는 “국민의힘의 ‘원외 투쟁’은 국민의 호응을 받을 수 없다”며 “최근 어려워진 민생을 고려한다면 기획재정위나 산자위 같은 민생 관련 상임위에 빨리 참석하라고 하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미 11개 상임위에 ‘강제 배정’된 여당 의원들은 자신이 당에 제출한 희망 상임위 관련 업무를 진행해야 할지, 아니면 강제 배정 상임위 업무를 준비해야 할지 애매해져 버렸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강제 배정된 상임위는 원하지 않은 상임위이고, 지역구 의정활동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옮겨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 의원은 “아직 상임위원장을 선출하지 않은 7개 상임위에 속해 있어서인지 상임위가 ‘강제배정’되지 않았다”면서 “당분간 당내 활동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 구성 협상으로 인한 거대 여야 다툼 속에서 제3당 의원들은 실속을 챙겼다. 이준석 개혁신당 전 대표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과방위뿐만 아니라 예결위에도 들어갔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여야 중진들이 통상적으로 가는 국방위에 배치됐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기획재정위와 국회운영위에 배치됐다. 검사 출신인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법사위에서 활동한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전문 분야인 외교통일위에 속했다.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와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인기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예결위 두 곳에서 활동하게 됐다.

윤호우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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