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선서 개혁파 후보 1위 이변…5일 강경파 후보와 결선투표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지난달 헬기 추락사고로 숨지면서 급작스럽게 치러진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온건개혁파 후보인 마수드 페제시키안(70)이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심복인 강경파 사이드 잘릴리(59) 후보와 다음달 5일 결선 투표를 치를 예정이다.

◇개혁파 페제시키안 예상외 1위…“기존 체제 불만 반영”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이란 보궐선거 개표가 잠정 완료된 가운데, 온건개혁파 후보인 페제시키안이 득표율 42.5%로 1위를 차지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측근인 강경파 후보 잘릴리는 38.6%로 2위에 올랐다. 당선이 가장 유력하다고 예측됐던 모하마드 바게리 갈리바프(63) 국회의장은 13.8%로 3위에 그쳤으며, 시아파 성직자인 무스타파 푸르모하마디(64) 후보는 0.8%로 4위를 기록했다.

과반 이상 득표자가 없어 1위인 페제시키안과 2위 잘리릴는 7월 5일 결선 투표를 치를 예정이다. 이란 대선에서 결선 투표가 치러지는 건 2005년 이후 19년 만이다. 페제시키안은 심장외과의 출신으로 5선 마즐리스(의회) 의원이다. 잘릴리는 하마네이 ‘충성파’로 평가받는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2007년과 2013년 핵협상 대표로 참여했다. 두 후보 모두 이번이 세 번째 대선 출마다.

개혁파가 예상을 뒤엎고 득표율 1위를 차지한 것은 낮은 투표율, 이란에 대한 서방의 압박 및 제재 가중, 이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자유 억압에 대한 불만, 강경파의 표심 통합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란 국영방송에 따르면 약 8500만명의 이란 국민 가운데 18세 이상 6100만명이 투표할 자격을 갖추고 있지만, 이번 보궐선거 투표율은 40.3%에 그쳤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역대 대선·총선을 통틀어 사상 최저치다. 2021년 대선 투표율은 48.8%, 기존 최저치였던 올해 3월 총선 투표율은 40.6%였다.

강경파를 지지하는 유권자 상당수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강경파 유권자들을 통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당초 최종 대선 후보는 6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4명이 강경파였다. 잘릴리와 갈리바프를 제외한 강경파 후보 2명이 중도 사퇴하며 이들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관심이 멀어졌고, 잘릴리와 갈리바프로 보수층 표가 분열됐다.

이런 상황에서 페제시키안은 2015년 미국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파기 이후 잘못된 대응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2018년부터 부과된 서방의 제재를 완화해 침체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공약했다. 또 기존 지도자들의 적폐와 부패를 척결하고 히잡 착용 여부에 대한 단속을 합리화하는 등 사회적 억압을 완화하겠다고 약속해 표심을 끌어모았다.

FT는 낮은 투표율 및 과반 이상 득표자의 부재는 “이란 국민들이 개혁파와 강경파 모두에게 불만을 표한 것”이라며 “페제시키안을 지지한 많은 유권자들은 국가의 경제적 불안, 사회적 억압, 서방으로부터의 고립에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강경파 지도자들에 대한 환멸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선 투표 결과는 보수층 표심 결집 및 투표 참여 여부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다급해진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강경파는 “세계에서 이란의 내구성, 안정성, 명예와 존엄성은 국민들의 투표에 달려 있다. 투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참여를 촉구했다.

◇누가 되든 핵프로그램·친이란 세력 지원 등 유지될 듯이번 보궐선거 결과가 향후 이란 정책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누가 당선되더라도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나 중동 전역의 친이란 민병대 지원 등과 같은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로이터는 내다봤다. 다만 대다수 전문가 및 외신들은 잘릴리가 승리할 경우엔 사회적 억압이 더욱 엄격해지고, 미국이나 다른 서방 강대국과의 모든 교류에 보다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후계 구도엔 변화가 예상된다. 신정체제인 이란은 하메네이의 독재 체제로, 사망한 라이시 전 대통령은 사실상 강경파의 꼭두각시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메네이는 다음 최고지도자로 라이시 대통령을 세우고, 실권은 자신의 둘째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에게 쥐여주려고 했다. 세습 논란을 피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라이시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세습 가능성이 높아졌다. 권력 세습은 이란공화국을 세운 1979년 이슬람 혁명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에 현실화하면 하메네이 독재 체제는 거대한 역풍을 맞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잘릴리가 라이시 전 대통령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데, 페제시키안 당선시 하메네이 측은 또다른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FT는 “최고지도자가 정책 결정의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고 핵심 권력을 장악한 강경파가 외교 및 내정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현 체제에서 페제시키안이 직면한 과제는 그가 대통령이 됐을 때 가져올 변화를 경계하는 이란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 그리고 지지자들에겐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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