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금금즐, 토토즐

1990년대 중반 새내기 직장인 시절엔 토요일에도 출근했다. 오전만 근무하는 반공일(半空日)이다. 당시 대부분 회사가 그랬다. '주말출근'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아침에 나와 이런저런 일을 하다 선후배 또는 동료들과 백반이나 칼국수 등으로 점심을 먹고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주말로 접어드는 날이니 가끔 낮술로 발동이 걸리면 저녁 또는 밤늦게까지 밥자리, 술자리가 이어졌다.

요즘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이지만 당시엔 '불토'였다. MC 이덕화의 '부탁해요~~'란 유행어를 탄생시킨 토요일 저녁 예능 프로그램 '토토즐'(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이 장수하며 인기를 끌었고 '주말의 명화' '토요명화' 등을 보며 주말 밤을 보냈다. 요즘 같은 주5일 근무였으면 아마 '금금즐'(금요일 금요일은 즐거워)이나 '금요명화' 등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을 것 같다. 지금은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이 시작이라 회식도 목요일에 한다.

그런데 삼성이 조직의 위기감을 내세워 임원들이 주말근무를 시작하자 분위기가 묘해졌다. '주6일 근무'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이도 상당수다. 재계에선 삼성이 무언가를 시작하면 "삼성도 하는데…"란 명분을 앞세워 따라하기 일쑤였다. 실제로 사적으로 만난 많은 기업의 오너나 CEO(최고경영자)들이 진심 어리게 토요일 근무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지금 많은 기업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고물가·고금리, 불확실성을 넘어 불안한 글로벌 정치·경제상황, 위기의 남북관계 등 안팎의 리스크에 겹겹이 싸여 있다. 업황에 따라 롤러코스터급 부침에 시달리고 실적저하로 사업재편, 대표교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곳도 한둘이 아니다. 이젠 식상한 '비상경영'이 또다시 위기감을 키운다.

삼성 임원들의 주6일 근무는 그 자체로 얻는 업무적 효과보다 무기력하게 손 놓고 있지 않고 정신을 재무장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 실제로 주6일 근무가 주력 계열사로 확대되자 이미 토요일에도 출근한 삼성전자 임원들은 "아니 다른 데는 주6일 근무를 여태 안 하고 있었어?"란 농담을 주고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다고 삼성 임원들이 토요일에 나와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토요일 출근을 은근히 즐기는(?) 임원도 의외로 많다고 한다. 한 삼성 금융계열사의 임원은 "토요일에 나와 회의 등 긴박한 업무를 처리하라는 게 아니라 단 1시간이라도 혼자 조용히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라며 "실제로 토요일 근무 이후 월요일 회의 발표내용이 달라졌다"고 했다.

장단점이 있는 만큼 찬반양론도 팽팽하다. 부정적 의견의 상당수는 임원이 출근하면 부하직원들이 피곤해지고 더 나가 직원들도 토요근무를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서 나온다. 당장 바꿀 게 없으면 이렇게라도 '정신 재무장'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당위론도 있다. 소기의 성과는 있다. '삼성도 지금 심각한 위기'라는 인식을 안팎에 각인했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다는 공포가 엄습하면 '금금즐' '토토즐'을 따질 여유도 없다. (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2024-06-30T17:17:56Z dg43tfdfdgf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