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인데 ‘장애인 이동권’ 논의 없다니?

지난 2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60번째 출근길 시위를 벌였다. 4·10 총선이 코앞인 만큼 이날 전장연은 “선거운동이 시작됐지만 장애인 권리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리지 않는다”며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2021년 12월 처음 전장연이 출근길 시위에 나선 뒤, 전장연과 장애인 권리 문제는 내내 ‘뜨거운 감자’였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놀라울 만큼 관련 논의를 피하고 있다.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가 정말 “사회적 테러”(오세훈 서울시장)고 “시민을 볼모 잡는 부조리”(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라면 정치권은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할 텐데, 너무나 조용하다.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올라온 각 당의 정당정책을 살펴보면, 장애인 권리 공약은 조악하기 그지없다. 여당인 국민의힘 정당정책에는 ‘장애’라는 단어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국민의힘의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0대 공약 중 하나로 ‘장애인의 사회적 격차 해소’를 내세웠다. 발달장애인 돌봄 지원을 확대하고 발달지연 아동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약속 등이 담겼다. 다만 국민의미래는 4년 전 ‘미래한국당’이 그랬듯 국민의힘으로 흡수될 예정이라, 공약의 진정성에 물음표가 찍힌다.

더불어민주당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으로 장애인 권리 보장의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나온 내용을 국내법으로 선언하는 내용이라, 구체적인 장애인 권리 보장 공약이라고 보긴 어렵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비례 1번에 시각장애인인 서미화 전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배정해놓고도 장애인 권리 공약은 하나도 없다.

2년 전 국민의힘 대표 시절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와 ‘장애인 권리’를 주제로 생방송 토론까지 벌인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은 어떨까? 토론 당시 이 대표는 “(장애인 요구 중에) 안 하겠다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기대에 못 미치는 속도는 안타깝지만 점진적 개혁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개혁신당의 장애인 권리 공약은 0개다.

가장 구체적인 공약을 밝힌 곳은 녹색정의당이다. 녹색정의당은 환경·노동·여성 등 여러 영역에서 장애 관점을 담은 공약을 내놨고, ‘친환경 저상버스 100% 도입’ ‘장애인콜택시 2배 확대’ ‘발달·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보장’ 등 장애인 권리 공약도 내세웠다.

당장의 표 계산에만 골몰한다면 장애인 권리 공약은 언제나 밑지는 장사가 된다. 하지만 백인은 갑자기 유색인종이 될 수 없어도 비장애인은 언제든 후천적 장애인이 될 수 있기에, 장애인 권리가 곧 모두의 권리라고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런 정치의 역할을 잊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아닌 단순 표 대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지난 27일 시위 때도 어김없이 전장연은 거칠게 진압당했고 관련 기사엔 “그만 좀 하라”는 댓글이 달렸지만, 전장연이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총선 이틀 전인 오는 4월8일 아침에도 전장연은 61번째 출근길 시위에 나선다. 과연 정치는 남은 선거운동 기간에 이들의 물음에 성의 있는 응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지혜 이슈팀 기자 [email protected]

2024-03-29T10:21:33Z dg43tfdfdgf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