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앓고 약해진 인류… 13종 전염병 한번에 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로 전세계 사람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전염병에 걸리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의 의료조사업체 에어피니티가 60곳이 넘는 공중보건기관과 의료기관에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 일반 감기부터 홍역, 결핵까지 적어도 13가지 전염병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5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1년 10월~2023년 9월 독감 감염사례는 2019~2021년 같은 시기와 비교했을 때 약 40% 급증했다고 에어피니티는 전했다. 올해 1~4월 중국에서는 백일해 감염사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배 늘었다. 호주의 경우 올해 1~4월 영유아에게 기관지염이나 폐렴을 일으키는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감염자가 5만6000여건으로,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 밖에도 아르헨티나에서는 뎅기열이 사상 최악 수준으로 발병하면서 전국적으로 살충제 재고가 바닥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연쇄상구균 독성쇼크증후군(STSS)이 유례없는 속도로 유행했다. 미국과 유럽에선 홍역이, 전 세계에선 결핵이 급증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보다 10배 넘게 확산한 감염병이 있는 지역은 총 44곳에 이른다고 에어피니티는 분석했다.

각종 전염병이 갑작스럽게 유행하는 이유로는 코로나19가 인체의 면역체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면역 부채’ 이론이 제시되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케시 시안은 본인과 두 딸, 노부모가 올해 2월부터 5주 넘게 백일해, 코뿔소 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 코로나19, 대상포진, 폐렴에 연달아 시달렸다. 상하이의 사립병원 의사인 신디 위안은 “면역체계의 벽이 한 번 무너지면 모든 바이러스가 ‘논스톱’으로 인체에 쉽게 침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중보건 학계에서는 코로나19의 ‘부채질’이 개인의 면역력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란 분석이 더 힘을 얻는다. 미국 워싱턴대 산하 보건계량분석연구소(IHME)의 크리스토퍼 머레이 소장은 코로나19 방역 모범사례로 꼽혔던 캐나다, 일본, 싱가포르, 독일 등에서는 전염병 사망자가 많이 늘어났지만, ‘방역 실패국’인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등에서는 오히려 안정세가 나타나고 있다며 “훨씬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봉쇄로 가중된 사회적 불평등이 공공의료 시스템을 약화하며 빈곤층이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홍콩 소재 헬스케어 사업가인 데이비드 오웬스는 “취약계층에서 전염병이 확산하면 결국 모든 사람의 위험이 늘어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전염병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그동안 집계되지 않았던 감염 통계가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팬데믹 기간 보건의료 접근이 제한되고 ‘코로나 백신 음모론’이 확산하면서 백신 접종률이 낮아진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홍콩대 전염병학과장 벤 카울링 교수는 홍역, 소아마비, 백일해처럼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의 경우 전반적인 예방 접종률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 아이들에게 특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14일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2020년 미국이 동남아시아와 중동에서 중국산 백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비밀작전을 벌였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선진국의 ‘백신 사재기’로 백신 공급난이 심각해지자 중국이 개발도상국들에 자국산 백신을 지원하며 영향력을 키우려했는데, 미군이 이를 방해할 목적으로 X(옛 트위터) 등에서 가짜계정 300개 이상을 활용해 중국산 백신의 효능과 신뢰도를 깎아내렸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수석과학자 제러미 패러는 블룸버그에 “코로나19 비상사태는 끝났지만, 그 결과는 연쇄적인 ‘동심원’을 계속해서 그려 나가고 있다”라며 백신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재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홍정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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