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선 ‘개혁파 1위’ 이변에, 외신 “국민 반발 컸다···정책 변화 가능성”

29일(현지시간)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 결과에서 개혁파로 분류되는 마수드 페제시키안(70) 후보가 예상 밖 1위를 거둔 배경으로 외신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투표율에 주목하고 있다. 시민들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필두로 한 종교지도층의 통치에 반대 의사를 강하게 표현했거나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아갔다는 분석이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이란 내 주요 선거는 (최근) 3회 연속 최저 투표율을 경신했다”며 “이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종교 지도층이 전례 없는 수준의 반대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39.9%로, 1979년 혁명 이후 이란 대선 사상 최저 투표율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 분석이다. 이는 직전 최저치인 2021년 대선 투표율 48.8%보다도 8.5%포인트 낮다. 올해 3월 의회(마즐리스) 의원 선거 투표율 역시 역대 최저치인 40.6%였다. AP통신은 “투표 결과에 따르면 100만 표 이상이 무효표였다”며 “사람들이 투표할 의무는 느끼면서도, 누구도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는 신호”라고 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022년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사건과 이후 촉발된 ‘히잡 시위’ 등을 거론하며 “낮은 투표율은 정부의 폭력적인 단속 때문에 좌절감이 증폭된 이란인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NYT는 수십 년에 걸친 미국과 서방의 제재가 이란 경제를 황폐화하고 이란인의 구매력을 위축시킨 것도 시민의 좌절감을 키웠다고도 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 시민 키아누시 산자리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투표소 14곳을 돌아다닌 결과 5명 이상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전한 뒤, “테헤란의 절대 다수 사람들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대통령 선거를 무시하고 참여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며 “낙담, 절망, 무관심”을 그 배경으로 거론했다.

하지만 내달 5일 치르게 되는 결선 투표에서 페제시키안 후보가 최종 당선에 이를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론이 많다. 갈리바프 후보가 2위 잘릴리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등 보수 결집 흐름이 드러난 탓이다. 반면 노벨상 수상자인 정치범 나르게스 모하마디 등 유력 인사들이 선거 보이콧에 나서는 등 개혁 세력 내부에서 투표 참여를 놓고 의견이 갈렸던 만큼 결선 때 페제시키안이 추가 표를 얻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페제시키안이 실제 당선될 경우에도 이란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긴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로이터는 “성직자와 공화주의자(세속 정치인)의 이원적 통치 체제하에서 외교와 핵 문제를 포함한 주요 국가 정책을 형성하는 권한은 궁극적으로 하메네이에게 있다”며 “결과적으로 많은 유권자들은 페제시키안의 선거 공약 이행 능력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했다.

반면 워싱턴포스트는 “국가 안보 등 중요 문제의 최종 결정권은 하메네이에게 있지만, 정부의 수장이자 두 번째로 높은 고위 관리인 대통령은 경제 정책을 정하고, 도덕률이 얼마나 엄격하게 시행되는지에 영향을 미치며,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를 이끌 수 있다”며 페제시키안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란과 서방 간 핵 긴장·교착 상태 완화를 위해 미국과의 협상 재개를 포함한 실용적 외교 노선으로의 변화를 공약한 사람은 전체 후보 중 페제시키안이 유일하다. 로이터도 “서방과의 긴장을 완화하고 경제 개혁, 사회 자유화 및 정치적 다원주의로의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조문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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